‘워킹푸어(Working Poor)’.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이란 뜻으로 열심히 일을 해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거나 간신히 웃도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근로자 중 워킹푸어의 숫자는 348만명으로, 2007년 156만명의 2배가 넘는다.
장기불황과 높은 실업율로 인해 고용과 급여가 안정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안정하고 급여가 낮은 소위 ‘나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지난해 상용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230만4천167원. 그러나 대구 지역 상용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202만1천827원으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우리 지역에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워킹푸어로 살아가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폴리슈머다. 하지만 워킹푸어에겐 복지 역시 ‘푸어(Poor)’다.
◇모든 면에서 사각지대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6개월 전부터 대구 근교의 한 가전제품 제조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강모(24)씨. 강씨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앓아눕게 되자 장남인 그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해 얼마간 버는 돈은 모두 아버지의 병원비와 수술비로 들어갔다.
강씨가 맡은 일은 TV 브라운관 조립과 운반. 아침 8시 출근에 퇴근은 보통 저녁 7시를 넘기는 일이 많았고, 정해진 휴식시간도 없었다. 또 주말에도 불려나가 일을 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일하고 한달에 그의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120만원. 그나마 5만원은 기숙사비로 내야했다. 그것도 말이 기숙사지 공장 창고에 철제 침대가 전부였다. 몸도 마음도 지친 강씨가 열악한 처우에 대해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자 회사는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다. 지금처럼 청년실업율이 높을 때 다른 곳에서 대학 졸업장도, 기술도 없는 너를 받아줄 것 같냐”면서 그에게 따졌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거나 공부를 계속하고 싶지만 비정규직인 그는 고용보험에도 들어있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지도 못한다. 근로장려세제도 자격이 안돼 신청을 못했다. 차상위계층 혜택을 받고 싶어도 강씨와 어머니의 수입을 합치면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120%를 넘기 때문에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저축을 해보는 것’, 강씨의 바람은 그것뿐이다.
대부분의 워킹푸어는 비정규직이거나 정규직이라도 일한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도 받지 못한다. 생활과 노동의 모든 측면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정되고 보수가 높은 좋은 일자리일수록 근로복지는 더 잘돼있고, 워킹푸어들의 경우 복지적인 측면에서 철저히 배제된 경우가 많다”며 “정부나 지역사회에서 이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 맞추기가 어렵다.
워킹푸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빈곤하기는 하지만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대빈곤’은 아니라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일정기준에 맞춰 예산범위 내에서 형식적으로 집행되는 우리나라 복지정책 특성상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워킹푸어들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정부와 대구시의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신청기준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제한돼 있거나 아니면 자격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정부가 저소득 근로자에게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환급해주는 제도인 ‘근로장려세제(EITC)는 소득요건(부부 연간 총소득 합계액 1천700만원 미만), 부양요건(18세 미만 자녀 1인 이상 부양), 주택요건(무주택이거나 기준시가 5천만원 이하의 주택 한 채 소유), 재산요건(주택, 토지 및 건축물, 전세금, 예적금 등 보유재산 합계액 1억원 미만)을 모두 만족하지 않으면 혜택을 볼 수 없다. 지난해에도 대구지방국세청에 근로장려세제 신청을 한 8만6천 가구 중 1만5천 가구가 자격미달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한 대구시의 ‘2030 자립통장’의 경우도 차상위계층이 아니면 신청을 못한다. 신청자 293명 중 그마저도 지원예산 1억원에 맞춰 소득순으로 137명만이 선정됐다.
이에 대구시 한 관계자는 “저소득층 구제방안의 예산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자격기준에 맞춰 선별을 해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법적인 차상위계층 외에는 실질적 지원이 힘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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