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기의 발전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줬다고 생각한다. IT 기술의 발전은 보조공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시각 장애자인 나도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젊었을 때 이런 제품들이 있었다면 훨씬 빨리 유명해졌을 것이다.”


안드레아 보첼리. /유진상 기자
▲안드레아 보첼리. /유진상 기자

백발에 보잉 썬그라스, 깔끔하면서도 멋지게 차려 입은 한 외국인. 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국내에 여행 온 멋쟁이 외국인으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딘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움직일 때면 항상 누군가의 팔을 붙잡고 의지한다. 이쯤 되면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첼리는 팝페라 가수다.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IT조선은 4월 마지막 날, 내한 공연을 하루 앞둔 안드레아 보첼리를 서울 광진구 W호텔에서 만났다.

◆ 보조공학기기를 만나고 많은 것이 변했다

세계적인 성악가 겸 작곡가인 안드레아 보첼리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2010년 방한 후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의 가장 큰 방한 목적은 공연이지만, 빠듯한 일정에도 틈을 내어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원메디칼 관계자들이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방한 때마다 자원메디칼 관계자들을 만나 ‘한소네 U2’와 관련된 의견을 나눈다. /유진상 기자
▲안드레아 보첼리는 방한 때마다 자원메디칼 관계자들을 만나 ‘한소네 U2’와 관련된 의견을 나눈다. /유진상 기자

자원메디칼이 만든 IT기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원메디칼은 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돕기 위한 다양한 재활의료 보조기기를 개발, 생산한다. 보조공학기기 전문 브랜드 ‘힘스’를 운영 중이다. 시각장애인용 점자입출력기(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U2’가 대표 제품이다.

보첼리가 자원메디칼 관계자들을 만나는 이유는 자신이 사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함들을 다음 버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기 위해서다. 자원메디칼은 ‘한소네 U2’의 최우수 고객 중 한 명인 보첼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제품 기능을 업그레이드한다.

그는 잘 때를 제외하고는 잠시도 한소네 U2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일정관리와 인터넷, 쇼핑, 이메일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영감이 떠오를 때 마다 이를 저장하고 작곡하고 작사할 때도 활용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는 “평소에는 ‘한소네 U2’를 주로 사용하고, 백업용으로 ‘한소네 U2 쿼티’ 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한소네 U2는 높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내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악보를 그릴 수 있고 쓸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이 기기를 이용하면 악보를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다”고 극찬했다.

그는 “U2를 사용하고 난 뒤로 삶에 엄청난 변화가 왔고, 이 기계는 몸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떨어질 수가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보첼리가 ‘한소네 U2’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 유진상 기자
▲보첼리가 ‘한소네 U2’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 유진상 기자

◆ 장애는 시련일 뿐, 꿈을 막진 못한다

보첼리는 선천적으로 녹내장을 가지고 태어나 시력이 나빴다. 12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공에 맞은 뒤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시력이 안 좋긴 했지만, 한 순간에 시력을 잃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력을 잃은 그는 꿈도 잃는 듯 했다.

어렸을 적 그의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 음악에 남다른 재능도 보였다. 그의 부모는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피아노, 플루트,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오페라를 좋아했던 그는 당시 오페라 아리아와 이탈리아 가곡들을 섭렵하고 유명 이탈리아 테너들에게 빠졌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경연대회 우승으로 이어졌다. 음악가로서 탄탄대로가 놓여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력을 잃으면서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행동에도 제약이 생기면서 그는 한동안 꿈을 접었다. 대신 살아남기 위해 점자를 익혔다. 공부도 열심히 해 피사(Pisa) 대학 법대에 진학했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어릴 적 노래하며 꿈꿨던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를 버리지 못했고, 다시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서 내로라 하는 성공한 음악가로 자리를 잡았다. 장애는 한 순간의 시련이었을 뿐 간절했던 꿈까지 막지 못했다.

◆ 자신이 잃을 뻔한 꿈...되풀이 되지 않기를

시각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0.4%에 달한다. 이들 중 일부는 수술로 앞을 볼 수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들이 일상 생활을 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주는 기술인 ‘보조공학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각 장애인은 다양한 현실 장벽이 부딪히게 된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과 전자출판 콘텐츠가 유통되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장애인들은 정보 접근의 장벽, 콘텐츠 부족, 금전적인 이유 등으로 소외받고 있다. 한소네 U2와 같은 보조공학기술 기기들이 너무 고가라는 문제도 극복해야 할 산이다.

보첼리는 “과거 에어콘이 차량에 처음 장착이 가능했을 때, 롤스로이스나 벤츠 같은 고가의 차량에만 장착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모든 차들에 장착되고 있다”며 “문제는 가격인데 이마저도 점진적으로 해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첼리는 시각장애인을 돕는 자선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연의 수익금 일부도 시각 장애 아동을 위한 복지 시설에 기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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