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에 빨갛고 노란 꽃이 있어요.” “이쯤이 맞나, 아니면 조금 더?” 지난 22일 오후 울산대공원에서 자원봉사자와 카메라를 든 정재선(67)씨의 대화다.
정씨는 곧바로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정씨는 2010년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앞에 무언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는 30여 년간 목공예를 해 전국공예품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탈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10년 전 ‘망막색소 변성증’을 앓으면서 시력이 나빠졌다. 고통과 두려움으로 지내던 그는 목공예를 그만두고 2년 전 카메라를 잡았다.
울산시 시각장애인복지관의 사진 수업을 들은 게 계기였다. 그는 처음엔 ‘시각장애인이 무슨 사진을 찍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꿋꿋이 사진을 촬영 중이다.
이날도 다른 시각장애인 6명(1급 4명, 2급1명, 6급 1명)과 함께 울산대공원에 촬영을 나왔다. 이들 장애인들은 강사와 자원봉사자가 풍경·사물을 설명하면 셔터를 누른다. 이날 촬영은 1시간 동안 계속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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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촬영술은 비장애인 못지 않다. 강사인 최분경 사진작가는 “지난해 8월부터 22차례에 걸쳐 이론·실습 공부를 한 결과 일반인 못지 않은 사진을 찍는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렌즈 뚜껑을 열지 않고 사진을 찍는 등 불편을 겪거나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들은 촬영을 통해 자신감과 희망을 찾고 있다. 정씨는 “결과물을 볼 순 없지만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1급인 정숙아(62·여)씨는 손자의 모습을 담은 앨범을 만들겠단 목표를 세웠다. 그는 “이미 자녀가 커가는 과정을 찍어 앨범으로 남겼다”며 “손자에게도 앨범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 시작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이 찍은 사진 40여 점을 다음달 23~28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한다. 가은미 복지관 팀장은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은 이상할 것이란 편견을 깨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보지 못하는 걸 봅니다…시각장애인의 사진 도전
http://news.joins.com/article/1963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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