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3년. 하루 이틀이면 낫겠지 생각하다 인근 병원에 들렀더니 큰 병원으로 가야하는 병이라고 했다. 망막색소변병증.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 병은 조금씩 조금씩 시력을 잃게 한다고 했다. 불치병이라는 이야기에 마음을 먼저 닫았고, 곧이어 눈도 닫혔다. 처음에는 세상에 설 자리를 잃었다는 생각에 잠시 방황도 했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격려는 기어코 그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손에는 그의 또다른 꿈인 원반이 들려있다.
“날아가는 원반을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손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이게 얼마나 날아갈지는 가슴으로 느껴져요.”
울산 장애인육상연맹의 배유동(47)선수. 배씨는 울산 장애인육상팀 중 유일하게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원반던지기 한국 대표로 뽑혔다. 29일 선수촌에 들어가는 배씨는 오는 12월 초 광저우에서 자신의 기량을 시험할 계획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배씨의 삶은 시력을 잃은 후 180도 바뀌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안마를 배우고, 볼링도 배웠다. 배씨는 “처음에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며 “한동안 등을 돌렸던 세상을 다시 접하면서 희망을 찾게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6년, 지인을 통해 우연히 원반던지기라는 종목을 접하게 됐다. 학창시절 잠시 권투를 하는 등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배씨는 원반과 포환, 창 던지기 등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아시아장애인육상 포환던지기 1위, 전국장애인체전 1위, 전국장애인육상대회 1위. 불과 4년 만에 이룬 성과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제대로 운동을 시작한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장애인육상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무릎을 치는 유명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기술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 매력에 빠지게 됐습니다. 특히 손에서 원반이 떠날 때의 쾌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은 처음인 만큼 큰 욕심은 없다고. 대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란다. 원반을 통해 희망을 찾았던 배유동 선수. 그가 세상을 향해 날린 원반이 이번에는 얼마나 멀리 날아갈지 지켜보자.
김성수기자 ks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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