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어이! 어이!” 포수가 힘찬 구령을 세번 외치자, 장명식(41) 투수가 힘껏 공을 ‘굴린다’. 지면을 스치듯 빠르게 굴러간 공이 홈플레이트를 살짝 비켜가자, 포수가 “아웃코스 반개”라고 알려준다. 바깥쪽으로 공 반개가 빠졌다는 뜻. 영점 조정을 한 투수가 이번엔 한 가운데로 굴렸는데, 박경균(41) 타자가 배트로 정확히 때려낸다. 그러나 힘이 없는 타구. 굴러온 방향으로 정직하게 되돌아 온 공을, 투수가 제자리에서 침착하게 잡는다. “쓰리아웃, 체인지!”
10일 오후 남구 태화강 둔치 야구장에서 경기가 한창이다. 이곳에서의 야구경기는 익숙한 풍경. 그런데 경기를 흘깃 쳐다본 산책객들이 발길을 멈추고는 한참 동안 구경한다. 이색적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이고, 경기는 오로지 ‘소리’로 진행됐다.
이날 경기는 울산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이 주최한 ‘제2회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건강증진대회’의 일환으로 열렸다. 친선경기였지만, 선수들은 꽤나 치열하게 임했다.
시각장애인 야구에는 야구공 대신, 소리가 나도록 안에 방울이 든 핸드볼공이 사용된다. 팀은 앞을 전혀 못 보는 ‘전맹’선수와 가까운 물체를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약시’선수로 구성된다. 투수가 공을 굴리고, 타자가 받아치는 방식은 일반 야구와 똑같다.
다만 수비에서 전맹선수과 약시선수의 역할이 나뉜다. 투수를 비롯한 내야 앞쪽에는 전맹선수 5명이 설 수 있다. 이들은 땅볼을 잡기만 해도, 타자는 아웃이다. 또 1·2·3루 베이스가 각각 2m 간격을 두고 2개씩 놓인 것도 특징이다. 안쪽 베이스는 수비용, 바깥쪽은 주루용인데 선수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각 주루베이스와 투수 옆에는 박수를 쳐 방향을 유도하거나 공을 주워주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이경우(48)씨는 “한때 전국대회까지 열렸던 야구가 근래 다른 종목에 밀리면서 침체됐는데, 오늘 경기를 해보니 외야까지 공을 날리는 강타자가 울산에도 많았다”면서 “아무 두려움 없이 1루까지 20m를 전력질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우리에겐 소중한 경험이다”고 했다.
허광무기자 ajtwl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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