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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해설작가의 자부심과 고충

작성자:울산시각장애인복지관 | 작성일자:2022.11.01

‘눈에 선하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작가 5명이 작가생활 10년을 기념하여 화면해설의 경험담들을 책으로 내자는 뜻을 모아 세상에 내놓게 된 책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에서 화면해설방송물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어 화면해설작가 교육을 위한 교육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한 것인데, 이들은 모두 제3기에 해당한다.

화면해설이란 방송이나 영화 등의 화면 상황을 설명해주는 서비스인데, 이 서비스를 위해 해설 원고를 작성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화면해설작가다.

화면해설작가들은 대화가 없는 사이 공간에 설명을 넣어야 하므로, 소리 전문가가 되었고, 감성이 넘치는 설명을 하다 보니 로맨틱 표현의 전문가가 되었으며, 설명을 잘하기 위해 현장에 가 보거나 직접 경험해 보는 행동파가 되었고,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검색의 달인이 되었다고 한다. 배경이나 표정, 행동을 생생하게 설명하다 보니 드라마를 즐기는 자가 아니라 분석가가 되었다. 취향과는 무관하게 주어진 드라마를 소화해야 한다.

‘눈에 선하게’ 제1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가’에서 화면해설이 무엇이고, 어떤 작업들을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2부 ‘세상을 들려준다는 것의 의미’에서는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기법들을 털어놓는다. 제3부 ‘당신과 모든 걸 나누고 싶어서’에서는 직접 작업한 작품들을 통해 고심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제4부 ‘화면해설이란 일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에서는 보람과 고단함과 고민과 바람을 담았다.

권성아 작가는 ASM(자율(Autonomous), 감각(Sensory), 쾌락(Meridian), 반응(Response))는 뇌를 자극해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는 영상이나 음성을 말하는데, 소리는 눈을 감고 감상해 보는 것이 시각장애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삼겹살 굽는 소리를 소나기 오는 소리로 들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키스신에서는 키스 전의 과정만 설명하고 소리로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성우가 작가 원고를 얼마나 적절하게 말해주는지도 중요하다고 한다. 연애 이야기에서는 연애 세포가 팍팍 살아나게 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신과 함께’를 해설하면서 일곱시왕이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을 심판하는 과정을 짧은 시간에 해설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을 말한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았던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먼저 충분히 이해해야 설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필자도 첫 직장인이었던 점역사 시절 교과서에는 꽃이나 운동기구, 강에 사는 물고기 등이 그림만 나와 있어 무슨 꽃인지, 물고기 이름이 무엇인지 설명을 붙이면서 실수를 할까 봐 밤새워 자료를 찾고 여러 번 다시 확인했던 일이 기억난다.

칠레의 빌라 그리말디가 정보기관이 되어 고문과 학살이 자행되었던 장소가 아파트가 들어설 뻔한 것을 교육기관으로 재탄생한 이야기에서, 영상에 나오는 꽃이 장미라는 것과 놓여 있는 상자에 고문시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온갖 기사를 다 검색해야 했던 이야기에서 정확한 정보를 위해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작가들은 원고마감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는 일이 대부분인데 가치봄 영화 ‘헤어질 결심’ 해설을 하고, 직접 상영관에 가서 잘못된 부분이 없을까 조바심으로 보았는데, 시각장애인들의 감탄사를 듣고 너무나 행복했다고 한다.

김은주 작가는 화면해설은 볼 수 없는 것을 들려주는 작업이므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게 설명한다고 했다. 작가는 구성작가에서 화면해설 작가로 변신하였는데, 아직도 화면해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자막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등 오해가 많다며, 누구나 방송접근권을 가지고 있으니 제작하는 이와 시청하는 시각장애인을 한 번쯤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곤포 사일리지’란 용어가 나오는데 낯선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뜻을 찾아도 길게 설명할 수도 없고, ‘마시멜로 같은’이란 설명을 만들기에도 무척 고민이 많았음을 말한다. ‘다우징 단’이란 말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을 생각하여 수맥탐지사라고 해설한 기억을 회고한다. 데이빗이 입에 물고 씹던 것이 입담배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도 보통 고생한 것이 아니었다.

2001년부터 ‘일요스페셜’과 ‘전원일기’에서 화면해설이 시작되었다. 2005년에는 전격 화면해설을 방송사들이 하기 시작하여 2010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과 2011년 방송법 개정으로 의무화되었다. 미국은 1996년 시작하여 2000년 권고사항으로 법제화되었다가 2010년 의무사항이 되었다. 넷플릭스는 화면해설을 담고 있지만, 왓차, 웨이브, 티빙 등 OTT 플랫폼은 아직 화면해설을 하고 있지 않다. 2021년 방통위의 ‘소외계층을 위한 미디어 포용 종합계획’에 의거 2025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화면해설이 확대된다고 한다.

이진희 작가는 해설 삽입 공간이 좁아서 포기해야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물 흐르듯 해야 한다고 했다. 화면해설 작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아, 좋은 일’로 여겨 단순 봉사일로 여기는데 전문직임을 강조한다. 달달한 로맨틱에서 반짝이는 표현들을 평소 얼마나 연구하겠는가. 화면해설은 재2의 창작임을 말한다. 작가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도 느끼도록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잠을 자다가도 표현 언어가 떠오르면 이불킥(이불을 차고 일어남)을 하고 메모를 하여 표현사전을 만들고 가장 적절한 표현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착붙(착 달라붙는) 표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오락물을 해설하다 보면 가려진 인물의 이름을 알아야 하고, 춤동작을 전문용어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고, 동시에 많은 등장인물을 일일이 구별하도록 설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쇼다운’을 해설하고 넉다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부가 등장하는 드라마 해설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인공지능이 호미와 쟁기를 사라고 권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롱보드가 무엇인지, 여자 복서 이야기에서는 복싱 용어 등 공부하다 보니 잡학박사가 되었다면서 화면해설 작가가 되려면 제1의 시청자 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임현아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가요가 나온다고만 알았던 것이 벨소리였을 수 있다면서 "끼익‘ 하는 소리가 불쾌한 소리로만 들었는데 휠체어가 문턱을 넘는 소리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해설이 다른 소리를 덮어도 되는지 판단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면해설을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명한다. 폭포라고만 하면 다양한 폭포들 중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으므로 특징을 오롯이 담아야 한다고 한다. 북파공작원을 북한공작원으로 잘못 말하면 큰일이다. 먹방에서는 완성된 문장보다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살려 분위기를 전한다고 한다.

로봇이 등장하여 합체하는 애니메이션에서 해설은 캐릭터 이름, 특징, 무기이름, 무엇이 어떻게 합체되는지 알기 위해 로봇을 사서 조립해 보기도 하고, 수십 번 영상을 돌려보면서 급난감해 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는 문화재를 오디오로 해설하는 일이었는데, 석조전을 해설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여 기둥 수, 색감 등등 해설했는데 발로 뛰어야 하는 직업이 해설작가임을 설명한다.

해설을 맡을 때 50분 영상이라 하였는데, 알고 보니 60분인 경우가 있었는데, 10분의 해설을 위해서는 몇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는데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서운했던 기억도 전한다. 10분으로 인해 납기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동생이 발달장애인인데, 너무 바빠 큰 맘 먹고 여행을 갔다가 갑자기 ‘동행’ 해설 작업을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리조트에서 밤새 일하고 동생과 놀아주지 못한 사연도 회고한다. 직업으로 동생과 잘 놀아주지 못해도 작가를 하는 이유가 동생이라며 동생에게도 화면해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생과 ‘전우치’를 보다가 사람들이 날아간다고 설명해주자, 동생이 전우치에게 혼나는 거라고 오히려 설명을 들었을 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홍미정 작가는 가족이 세상을 전하는 것처럼 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하지만, 사람마다 요구가 다르다고 말한다. 해설이 너무 많으면 따라오기 바쁠 수 있으며, 공간이 적어 충분한 해설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해설이 충분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해설에서 주어가 매우 중요하다. 누구의 행동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같이 있는 사람과 같은 시간에 웃어야 하므로, 그럴 여유가 없다. 맥을 끊지 않아야 한다며 이를 맥커터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표현한다. 등장인물을 별명으로 부르는 경우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해설해야 한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탁재훈이 베짱이처럼 행동한다고 하여 ‘탁짱이’라든가, 김종국이 짠돌이라고 하여 ‘짠국이’이라 부르고, 임원희가 짠하다고 하여 ‘짠희’라고 부른다.

신조어 해설은 참으로 어렵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를 두고 ‘나래코기’라는 자막이 나올 경우, 왜 그런 자막이 있는 건지 알려주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이 함께 웃기 어렵다, 그래서 ‘웰시코기를 닮은 나래’라고 해설을 쓰지만 ‘웰시코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게 왜 웃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리가 짧고 엉덩이가 큰 강아지 웰시코기’라고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라디오스타’에서 권혁수가 가수 김경호 성대모사를 하면 사진에 CG(컴퓨터 그래픽)로 김경호 생머리를 합성되는데, 그런 것까지 적절히 설명해야 시각장애인도 웃을 수 있다.

‘쮸쮸바’를 규정상 특정 상표를 말할 수 없어 ‘펜슬형 빙과’라고 전문용어로 해설해도 이해가 쉽지 않아 ‘빙과류 아이스크림’이라고 싱거운 해설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특정 업체를 말할 수 없어 네이버를 ‘녹색 창’이라고 하거나, 인스타그램을 ‘인별그램’이라고 해설하니 답답하다. 콜라는 상표나 업체명이 아니라 보통명사다. ‘오! 문희’에서 누구나 아는 요괴워치를 ‘시계장난감’이라 해설하니 만족스럽지 못하다. ‘퍼펙트맨’에서 각종 외제차가 등장하는데 그냥 외제차라고 해설하면 구분도 되지 않는다.

해설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을 경우,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다가 여러 지인과 논의도 하고 도움도 구하고 책도 보고 인터넷도 검색하면서 해설을 제대로 하려는 고군분투의 노력을 ‘눈에 선하게’의 책을 통해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https://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22102609004523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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