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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롭게

작성자:가옥현 | 작성일자:2010.03.22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것과 많은 것에는 살뜰한 정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다 보니 무뎌져서 작고 적는 것에 고마워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
내가 가끔 시내에 나오면 편지가 와 있다. 편지는 많이 받지만 답장을 자주 쓰지는 못한다. 지난 겨울 어느날 밖에는 눈이 오고 뒷골에선 노루 울음소리 들려 내 마음도 소년처럼 약간 부풀어올랐다. 그래서 묵은 편지를 뒤적이다 답장을 몇 군데 써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 뒤적이다가 도배하고 남은 종이 사이에서 화선지 두 장을 발견했다. 그것도 전지가 아니고 쪼가리였다. 그걸 오려서 편지를 몇 통 썼는데, 종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아껴 써야 했다. 자연히 종이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때는 글씨도 크게 써서 끝내곤 했는데 그날은 아주 잔글씨로 써서 몇 군데 띄워 보냈다. 그때 적은 것이 참 살뜰하고 고맙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 지물포에서 화선지를 스무 장 남짓 사갖고 왔다. 그랬더니 쪼가리 두 장 가졌을 때의 오붓하고 살뜰하고 고맙던 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많은 것은 그런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 하지 말라.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 모자랄까봐 미리 걱정하는 그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다. 그것이 가난이고 결핍이다.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中에서-

단순하면서도 가난하되,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삶,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법정스님의 온기를 스님의 책을 통해 다시금 느끼며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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